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가디슈 전투 (문단 편집) === 반군세력 내 파벌다툼의 시작 === 시아드 바레 축출 후, 명목상으로는 알리 마흐디 무하메드가 임시 대통령이 되고 1992년 3월 군벌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UN감시단이 입국하게 된다. 이제까지가 소말리아 혁명이라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소말리아 내전기에 접어들게 된다. 비록 새로운 정권이 세워지긴 했으나, 이후 소말리아는 군벌중에서도 최대세력이었던 USC의 근간을 이루던 파라 아이디드의 무장세력, 알리 마흐디 무하메드의 무장세력, 오사만 알리 아토의 무장세력으로 크게 나뉘어 자기들끼리 정권을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시아드 바레를 축출하려고 뭉친 USC가 정권 차지를 목적으로 이젠 갈라진 것이다. 이 배경은 또 부족간의 문제였다. USC는 원래 하브예 부족 최대의 분파인 아브갈 소부족의 지도자인 알리 마흐디가 의장의 자리에서 정치적 지배자 위치에 있었고, 전쟁을 실질적으로 지도한 것은 하브 지디르 소부족 출신이지만 군 경험과 정부내 세력이 있었던 파라 아이디드였고, 아토는 군수품을 제공한 자금원이었다. 그런데 알리 마흐디가 정권을 쥘 상황이 되니 실질적 지도자로 자처하던 아이디드가 반발한 것이다. 결국 대립은 임시 대통령 알리 마흐디와 군사적 경험이 풍부했던 파라 아이디드로 갈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이 와중에 역대급 [[가뭄]]까지 겹치며 420~50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죽으면서 소말리아는 [[생지옥]] 그 자체가 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USC 내에서의 밥그릇 싸움은 계속 진행됐고, 소말리아 전역에 있는 파벌과 가문들도 파라 아이디드, 마흐디의 무장세력에 합류하고 갈라지면서 사실상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의 내전으로 치달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